기축년 돋보인 동갑내기 소띠 경영인 김순택·김반석 부회장

2009년 기축년을 가장 기분 좋게 마감한 CEO는 누굴까. 적어도 이 두 명은 언급해줘야 할 것 같다. 김순택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장 부회장(60)과 김반석 LG화학 부회장(60)이다.

이 두 CEO는 49년생 동갑내기 소띠 경영인이다. 2009년 소띠 해를 맞아 국내 CEO 가운데 가장 화려한 실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 12월 15일 삼성그룹은 대대적인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장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김순택 전 삼성SDI 사장이 단연 화제였다. 삼성 입사 후배인 최지성 사장이 삼성전자 단독 CEO를 맡고 있는 상황에서 옮겼다는 점부터 그랬다.

그러나 삼성전자 핵심관계자는 “김 부회장을 최 사장 지휘 체제 아래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김 부회장 같은 중량급 인물에게 신사업 추진업무를 맡긴 것이 포인트”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의 미래를 김순택 부회장의 두 손에 맡겼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힘 있는 자리에 오른 것이다. 김순택 부회장이 걸어온 길을 보면 그가 왜 삼성전자의 신사업 추진에 적합한 인물인지 드러난다.

김순택 부회장, 삼성전자 미래 맡아

지난 99년 12월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김순택 부회장이 삼성SDI 대표로 내정됐을 때, 삼성SDI는 여전히 ‘삼성전관’이라는 옛 사명(社名)이 더 친숙한 브라운관 전문회사였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삼성전관’은 삼성전자보다 주가가 높았고, 그룹 내 최고 우량회사로 꼽혔다. 그러나 김 부회장이 자리를 옮긴 때는 이미 그 영예가 사라진 뒤였다.

김순택 부회장은 삼성SDI를 단지 브라운관회사로만 묶어두지 않았다. 전혀 다른 새로운 회사로 만들었다. 1차 변신은 디스플레이 전문회사다. 당시만 해도 이름조차 생소했던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 ‘OLED(자체발광디스플레이장치)’ 등의 사업에 매달렸다. ‘브라운관으로 먹고살아도 될 회사가 무리하는 것 아니냐’ ‘제2의 삼성자동차가 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 섞인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그의 선견지명은 곧 드러났다. 2003년 들어서면서 비(非)브라운관 매출이 브라운관 매출을 능가했다. PDP나 2차전지, OLED는 손익분기를 넘어섰다. PDP값이 떨어지면서 수요가 크게 늘어 라인을 풀가동해도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벌어졌다. ‘신규사업’이었던 이 분야는 핵심 육성사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김순택 부회장이 시장이 죽어가는 브라운관사업에만 매달렸다면, 삼성SDI라는 이름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뿐이 아니다. 김순택 부회장은 ‘그린경제’라는 화두를 잘 쫓아갔다. 2차전지를 핵심사업으로 육성한 것이다. 전기자동차용 전지 양산 시스템을 갖췄고, IT형 소형 2차전지 양산 전략도 마련했다. 실제로 삼성SDI는 보쉬와 합작해 만든 ‘SB리모티브’를 통해 BMW의 차세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단독으로 공급하는 계약도 맺었다.

삼성SDI가 리튬이온 2차전지사업에 진출한 지 8년 만에, 10년 이상 먼저 이 분야에 진출한 경쟁사를 제치고 당당히 세계 2위 자리에 올라섰다. 유명 조사기관의 품질과 안정성 평가에서는 최고 점수를 얻기도 했다.

삼성전자 신사업추진팀은 2006년 출범했지만,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를 제외하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연매출 130조원에서 향후 10년간 400조원으로 키울 꿈을 갖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신사업 발굴이 절실하다.

김순택 부회장의 어깨에 삼성전자, 나아가 삼성그룹의 미래가 걸렸다는 지적은 결코 헛말이 아니다.

김반석 부회장, LG화학 2차전지 선도기업으로 이끌어

김반석 LG화학 부회장도 2009년 근사한 한 해를 보냈다. 지난해만 해도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반석 부회장도 “2009년이 안 보인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김순택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그린경제’라는 세계적인 흐름을 선도해나가기 시작했다. 올해 1월부터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미국 GM이 전기자동차 ‘시보레 볼트’의 리튬 이온 배터리 단독 공급자로 LG화학을 선정한 것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매출만 2015년까지 2조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사업이다.

LG화학이 더 빛나는 이유는 전지시장의 선두주자가 됐다는 점이다. 향후 미래형 자동차는 전기차가 될 것이라는 데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변화에 가장 필요한 기술이 2차전지다. LG화학이 이 분야를 선도하면서 자동차산업과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놨다. 김반석 부회장은 “지금까진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였는데, 이제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됐다”고 표현할 정도다. 10년 가까이 2차전지 분야에 꾸준히 연구개발(R&D)한 성과가 나타난 것이다.

올해 실적이 매우 좋다. LG화학의 지난 3분기 매출은 4조3643억원.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7299억원과 5430억원이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9.7%, 영업이익은 75.3%, 순이익은 82.8% 증가한 수치다. 분기별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치다. 연초 7만원대였던 주가는 22만원대로 치솟았다.

물론 환율이 효자였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2009년 경영계획을 짤 때 원/달러 환율을 평균 1100원으로 봤는데 1600원까지 치솟았던 효과가 분명 있었다. 그러나 업계 안팎에서는 김반석 부회장의 스피드경영이 주효했다고 입을 모은다. 김 부회장은 공학도답게 물리학 공식을 예로 든다. ‘E(성과)=M(자원)×C(속도)²’이기 때문에 속도가 2배면 성과가 4배로 급증한다는 것. 반대로 속도가 절반이 되면 성과는 4분의 1로 줄어든다. 그래서 만든 전략도 남보다 ‘먼저’, 남보다 ‘빨리’, 남보다 ‘자주’다.

스피드경영 효과 탁월

무조건 빨리만 하자는 게 아니다. 김반석 부회장이 스피드경영을 강조하는 의미는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야 꼭 필요한 일에 집중해 결과적으로 시장 변화에 맞는 제품을 제때 내놓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광학소재사업부의 경우 경쟁사보다 5개월 먼저 신제품을 출시해 모니터용 편광판 제품의 대만 시장 매출을 두 배 이상 늘리는 등 다양한 성공사례를 만들어냈다.

스피드경영을 위해 조직문화도 바꿨다. 상사 눈치를 보느라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의미로 스피드경영과 맥을 함께한다. 눈에 띄는 변화가 퇴근 시간이 빨라졌다는 점이다. 김 부회장은 “직원 몸이 상하는 것은 회사 자산이 상하는 것과 같다”며 정시 퇴근을 강조했다. LG화학 관계자는 “퇴근 시간이 빨라지면서 오히려 근무시간에 핵심업무에 집중해 ‘빨리’ 끝낼 수 있게 됐다”고 스피드경영의 성과를 설명하기도 했다.

김 부회장은 LG화학을 단순히 한국 기업이 아닌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이미 중국에만 공장이 10개고 현지 직원은 5000명을 넘는다. 앞으로 자연스럽게 다국적기업(MNC)으로 만들겠다는 계산이다.

또 신사업 기술 확보에도 공을 들인다. 석유화학 부문에서 코오롱의 고흡수성 수지(SAP)사업을 인수해 프로필렌아크릴산(SAP)로 이어지는 수직계열을 완성한 것도 미래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2차전지에서 만큼은 세계 최고 기업의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도 확고하다. 김반석 부회장은 충북 오창테크노파크에 내년 상반기까지 GM용 전지 양산 채비를 갖춘 뒤, 내년 하반기부터 6년 동안 배터리를 공급한다. 전기자동차용 리튬폴리머 등 청정에너지 분야와 디스플레이 소재 분야에서 최근 독일 쇼트사로부터 LCD글래스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 사업영역을 확장할 기반을 마련했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37호(09.12.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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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리스트와 함께 찾는 보석주] ⑤ 다날

박성찬 사장(왼쪽)이 정종선 애널리스트에게 내년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다가오는 날은 다 좋은 날.’

박성찬 다날 사장(46)의 명함에는 이런 글귀가 박혀 있다. 회사 이름인 ‘다날’이 담고 있는 의미다. 이 문구처럼 다날의 미래가 꽤 괜찮을 것도 같다. 당장 내년에 큼지막한 두 가지 얘깃거리가 있다. 주력 사업인 휴대폰결제 분야의 미국 시장 진입을 코앞에 둔 게 첫 번째다. 지난해 미국의 디지털콘텐츠시장 규모는 1800억달러. 한국의 10배가 넘는다. 한국에서 성공이 확인된 휴대폰결제 시스템이 미국에서 통용된다면 매출이 급격히 오를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의 이슈는 게임시장 진출이다. 2년간 50억원을 들여 개발한 게임이 시장에 나온다. 이 두 가지 사업이 제대로 풀리면 매출 820억원대(2008년 기준)였던 다날은 ‘퀀텀점프’할 수 있는 기회를 맞는다.

세계 최초로 휴대폰결제 시스템 개발

최근 박성찬 사장은 2009 대한민국IT이노베이션 대상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지난 2000년 세계 최초로 휴대폰결제 서비스를 선보여 대한민국 디지털콘텐츠시장 발전에 기여했다는 공로다.

다날은 벨소리와 컬러링을 국내 최초로 선보여 유명해졌다. 하지만 현재 매출 65%를 차지하며 효자 노릇 하는 사업은 휴대폰결제다. 휴대폰과 주민등록번호만으로 편리하게 결제하는 이 시장은 확장 일로다. 지난 2001년 850억원에서 올해 1조8000억원으로 7년 만에 20배 이상 커졌다.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의 65% 이상이 휴대폰결제를 활용한다는 통계도 있다. 디지털콘텐츠 분야에서 휴대폰결제 비중은 80%가 넘을 만큼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다날의 호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이폰 국내 출시 등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나면 콘텐츠 구매가 가능한 소액결제시장이 커질 것은 분명하다.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이 점을 다날의 강점으로 꼽는다.

국내 시장도 괜찮지만 더 큰 무대는 미국이다. 다날은 3년 전 현지법인을 세우고 미국 진출을 타진해왔다. 현재 미국에는 제대로 된 휴대폰결제 시스템이 없다. 온라인 결제업체 ‘페이팔’이 있지만 불편함 때문에 성공한 모델로 평가받지는 못했다. 다날이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선점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

다날은 내년 상반기 미국에서 첫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 6월 미국 메이저 통신사와 휴대폰결제 시스템 개발 및 운영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이 업체 가입자는 1억명에 가깝다. 박 사장은 “일례로 미국 아마존의 거래량은 한국 인터파크 거래량의 100배”라며 “시장규모로 볼 때 미국에서만 연간 5000억원 매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봤다. 곧 정훈진 부사장을 미국으로 파견해 막판 준비에 박차를 가할 참이다.

미국 시장뿐 아니다. 다날은 국가 간 장벽 없이 휴대폰결제가 가능하게 만드는 ‘IPN(International Payment Network)’ 구축에 뛰어들었다. 미국으로 유학 간 자녀에게 한국에서 부모가 휴대폰으로 용돈을 보내는 장면이 곧 현실로 이뤄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하나의 얘깃거리가 게임이다. 게임업계에서는 온라인 게임시장을 ‘레드오션’이라 평가하곤 한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박 사장은 성공을 자신한다.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방식을 접목했다는 이유에서다. 롤플레잉게임(RPG)·액션 등을 가미했는데, 올해 선보인 베타버전 반응이 좋다고 했다. 박 사장은 내년에 게임에서만 200억원대 매출을 기대한다.

게임시장에도 뛰어들어

박 사장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휴대폰결제, 벨소리, 통화연결음 등을 개발한 그의 아이디어로 볼 때 대단한 인터넷 전문가였을 것 같다. 실제로 이해진 NHN 창업주처럼 벤처 1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다. 고교를 졸업한 직후인 93년부터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막노동에서 시작해 바닥에서부터 건설업을 익힌 뒤 빌라나 재개발 아파트를 지었다. 개발 붐을 타고 사업은 번창했다. 당시 동년배들이 꿈꾸지 못할 큰돈도 만졌다. 인터넷 관련업에 뛰어든 건 회사 임원 성화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임원은 인터넷을 포함한 IT가 뜬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박 사장은 그의 얘기를 귀담아 들었다.

“어차피 건설 경기가 내리막길이었죠. 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고요. 그래서 97년 구로동에 다날을 만들었습니다.”

업을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는 건설회사를 임원에게 맡기고 다날에 매달렸다. 휴대폰 단말기에 한글을 입력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해 판매에 나섰지만 쓴 맛만 봤다.

하지만 그는 고객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다. 99년 일이다. 다날의 구로동 건물 사무실 바로 위층에 전자부품업체가 입주했다. 박 사장은 이 사무실에서 우연히 일본 야마하에서 제작한 4폴리(4개 악기로 연주) 칩을 봤다. 당시 일본에선 3개 악기로 연주한 음을 들려주는 3폴리 칩이 유행했다. 그는 곧장 일본으로 가서 칩을 구한 뒤 ‘휴대폰 벨소리 다운로드’라는 히트상품을 만들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사업 개시 3년 만에 흑자를 냈고 2000년 벨소리로만 45억원 매출을 올렸다. 그리곤 같은 해 휴대폰결제 시스템을 개발했다. 인터넷이라고 해도 공짜는 없다는 그의 철학이 반영된 서비스였다.

“인터넷 서비스를 공짜로 인식하지만 결국 돈을 내도록 바뀔 것이라고 짐작했죠. 그렇다면 결제를 쉽게 해주는 게 필요할 텐데 휴대폰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고요.”

최근 인터넷 결제의 80%가 휴대폰이다. 다날의 휴대폰결제 시스템은 인터넷 유료화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다. 45억원의 매출은 지난해 825억원으로 20배 가까이 늘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게 마련이다. 박 사장은 외부 변수보다 중요한 게 내부 관리라고 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쏟는 공이 대단하다. 단적인 예 하나. 다날에는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바리스타가 있다. 그는 다날의 정직원이다. 바리스타를 둔 이유가 있다. 직원들에게 어떤 복지를 가장 받고 싶냐고 물었다. 가장 많이 나온 답은 연봉 향상. 그 뒤를 이은 요구사항이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예 유명 바리스타를 고용했고, 국외 유명 브랜드 못지않은 ‘다날표’ 커피가 탄생했다.

“제 경영 화두는 고객입니다. 고객이 원한다면 시장은 바뀝니다. 휴대폰결제도 소프트웨어업체가 금융을 한다고 규제가 많았지만 소비자가 원하니 다 해결됐습니다. 내부 고객인 직원의 목소리를 들어야 인재가 모입니다. 좋은 직원이 또 좋은 직원, 능력 있는 직원을 데려옵니다.”

애널리스트의 주가 분석

한풀 꺾인 주가 아이폰으로 재반등 시도 - 정종선 IBK투자증권 연구위원

다날은 지난 2000년 세계 최초로 휴대폰결제를 상용화한 업체다. 매년 휴대폰결제시장이 20~30%씩 성장하면서 다날의 외형 및 수익성 모두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휴대폰결제시장 규모가 2003년 5000억원에서 올해 1조8000억원으로 성장함에 따라, 다날의 매출액도 2003년 415억원에서 올해 1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도 성장세는 지속될 수 있다. 정부가 저작권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함에 따라 음악이나 동영상을 이용하기 위한 소액 결제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스마트폰 보급 확대가 휴대폰에서 사용할 프로그램이나 콘텐츠의 구매 증가로 이어져 전자결제시장의 성장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내년부터는 국내 시장에서의 실적 증가와 더불어 또 하나의 고속 성장동력이 추가될 것이다. 바로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미국 법인에서 지분법 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에서 이미 소비자 검증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적인 안착이 기대된다.

현재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 한국, 중국, 대만과 내년에 서비스를 개시하는 미국 등 다날이 진출한 국가들의 휴대폰결제 시스템을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앞으로는 한국 소비자가 미국 인터넷사이트 쇼핑을 할 때도 휴대폰결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서비스가 실시된다면 다날의 매출은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 8월 5일, 2만1200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연말보다 무려 1357%나 상승한 뒤, 최근에는 절반 정도 조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3년 동안 준비하던 미국 시장 진출에 대한 높은 기대감이 반영됐으나, 서비스 개시 시점이 내년으로 연기되면서 실망 매물이 출회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기된 미국 시장 진출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최근에 보여준 조정은 마무리되고 재상승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35호(09.12.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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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3번째 빼는 거다. 99년 직장에 들어갈 때까지 70kg내외를 유지하다, 급작스러이 80kg을 넘어섰다. 저녁 과식, 술, 야근으로 당연한 결과다.

맘먹고 매일 1시간 정도 운동(요것도 요령이 있다)으로 4개월 정도 만에 다시 70kg으로 뺐다.

그러나 요요로 다시 82kg까지.

이젠 한의학의 도움을 받아 한번 더 뺐다. 유명 한의사의 관장 요법인가로. 73kg으로.

하지만 역시 요요다 81kg으로.

삼세판 올해 9월부터 다시 뺐다. 이번에는 먹는걸로다. 12월 4일 현재 스코어 73~74kg이다.

사실 더 뺄 수도 있지만 속도 조절했다.

세번 딱 해보니 이제 다이어트가 뭔지 알 것 같다. 운동, 한방요법, 식이요법을 다해봤으니.

이젠 요요에 안 들어갈 것 같다. 들어가선 안되겠지만. 그 비결은 단순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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