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늘 부장판사 글

나는 스스로 내 자신이 합리적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나를 아는 많은 다른 사람들도 내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혹시 있을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내가 보수주의자라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중략) 

내가 왜 이 글의 서두에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이제부터 쓰려고 하는 내용에 대해서 그 내용을 보려 하지 않고 그냥 내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두루뭉실하게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부탁드리기 위함이다. 

최근에 한미 FTA 비준을 둘러싼 찬반세력 사이의 대립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갈등 요인으로 부각되었다. 그것은 이제 정치 논쟁의 범위를 넘어 우리 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되었다. 나는 지금 이 한미 FTA 비준과 관련하여, 그것이 여러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는 불평등 조약일 가능성이 있고, 특히 사법부의 재판관할권을 빼앗는 점에서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조약이며, 이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사법권을 위임받아 위 조약을 포함한 법률의 최종적인 해석권한을 가지고 있는 우리 법원에서 이제라도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려고 한다. 

한미 FTA와 관련해서 나의 입장은 처음에는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나는 그냥 막연하게 한미 FTA가 글자 그대로 한국과 미국 사이에 통상장벽을 해체하고 자유무역을 하자는 내용의 협약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무역장벽이 무너지고 있는 추세이고 우리가 대미무역에서 지금도 많은 흑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유무역을 하게 되면 비록 농업이나 축산업은 타격을 입겠지만 자동차 산업이나 전자, 섬유 산업에서 그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중략) 

그러다가 최근에 한미 FTA에 대한 논란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계속되면서, 나는 문득 내가 정작 한미 FTA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자자국가제소권이라는 ISD도 처음 들어보는 용어이고, 역진방지조항(Ratchet)이라든지,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현실유보와 미래유보 같은 용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한미 FTA에 대한 내용을 알아보려고 했다. 그랬더니 세상에, 한미 FTA 분량이 1,500페이지에 달한다는 것이다. 우리 법률 중에서 가장 방대한 법률이 본문 1,118조와 부칙 28조로 이루어진 민법인데, 그 분량은 100페이지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무려 1,500페이지에 이르는 협정이라니...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한미 FTA를 이해는 고사하고,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도대체 사람들은 한미 FTA에 대해서 뭘 제대로 알고 저렇게 찬반으로 나뉘어서 떠들어 대는 것일까? 나는 한미 FTA를 직접 찾아서 읽는 것을 포기하고 그에 대한 토론자료나 요약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찾은 것이 “을사조약이 쪽팔려서”라는 기획토론프로그램이었다. 50분 분량의 방송으로 3부작이니까 총 150분 정도 되는 분량이고, 토론참여자는 민주노동당 대표인 이정희 의원과 민주당의 정동영, 천정배, 이종걸 의원, 그리고 이해영 교수와 역사학자 한홍구이다. 물론 토론참여자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극히 일방적인 토론이다. 아니, 토론이라기보다는 성토장 같은 분위기이다. 그래도 내가 위 프로그램을 추천하는 것은 이 중에는 한미 FTA 전문을 제대로 읽고 연구하였다는 토론자가 2명 등장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대표인 이정희 의원과 이해영 교수이다. (중략)

이 토론회에서 이해영 교수의 발언은 그나마 객관적인 듯 보이지만, 그래도 프로그램을 제작, 주최한 측의 기획 의도가 빤히 보이는 만큼 조심해서 들을 필요가 있다. 나는 16년 동안 법관으로서 근무하면서 재판을 해 온 경험을 토대로 위 프로그램에서 토론자들이 개진한 발언에서 그들의 개인적인 의견이나 추측성 주장은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fact)만 추출해 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위 프로그램을 보고 난 결과, 나는 위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나 토론자들의 정치적 성향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한미 FTA가 여러 가지 독소 조항들을 품고 있다는 것, 특히 우리 나라의 사법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는 것, 우리나라에만 일방적으로 불리한 불평등 조약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 등에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한미 FTA에 대한 나의 입장이 종래의 “막연한 찬성”에서 이제는 “막연한 반대”로 바뀐 것이다. 여기서 아직도 “막연하다”고 하는 것은 여전히 내가 한미 FTA 내용을 제대로 검토해 본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한쪽 사람들로부터 들은 말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내가 한미 FTA에 대하여 합리적인 의심을 품도록 증명하는데 성공하였다. 

내가 위 프로그램과 기타 다른 자료들에 의하여 한미 FTA가 불평등 조약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품게 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나라는 성문법 국가이고, 한미 FTA가 비준되어 발효되면 그 협정 자체가 법률과 동등한 효력이 있는 조약으로서 규범적 효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면 신법우선의 원칙에 따라 1,500페이지에 달하는 한미 FTA에 배치되는 모든 법률과 하위 규범은 달리 개정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무효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불문법 국가로서, 한미 FTA 자체가 법규범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행법안을 만들어서 이를 의회에서 통과시키면, 그 이행법률만이 규범적 효력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번에 200페이지 남짓한 한미 FTA 이행법률을 만들어 의회를 통과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위 이행법률을 보면, “주법의 규정이나 적용이 협정에 불합치하다는 점을 이유로 하여, 여하한 자에 대해서도 주법 또는 주법을 적용하는 것이 효력이 없다는 선언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미국 정부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자도 한미 FTA를 근거로 청구권이나 항변권을 갖지 못하며, 미합중국 또는 주정부기관의 어떠한 조치 또는 부작위에 대하여 그것이 한미 FTA 위반이라는 이유로 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위 말이 맞다면, 한미 FTA로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법률상 장벽은 제거되었는데, 미국에 있는 모든 법률상 장벽은 그대로 존속한다는 말이니, 바로 이것이 불평등 조약이 아니고 무엇인가? 

둘째, 네거티브 방식에 의한 개방이다. 즉 한미 FTA는 개방을 유예하거나 제한하는 분야만 협정에서 적시를 하고 나머지는 모두 완전히 개방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현재 예측하지 못하는 새로운 서비스 시장이 열리게 될 경우, 우리나라가 이를 보호하고 시장의 이익을 지킬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와 EU 사이에 맺은 한-EU FTA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아니라 개방하기로 합의한 분야만 협정에서 적시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취했다고 한다. 내 생각으로는 우리나라보다 산업과 기술이 뒤떨어진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을 때는 네거티브 방식이 유리하고, 우리나라보다 산업과 기술이 더 발전한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을 때는 포지티브 방식이 유리하다. 그렇다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을 때에도 포지티브 방식에 의한 개방을 택했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역진방지조항(Ratchet)이다. 낚시를 할 때 바늘 끝을 구부려 일단 물고기가 미끼를 물면 더 들어갈 수는 있어도 빠져나올 수는 없도록 만든 것을 “ratchet"이라 한다고 한다. 즉 모든 시장에서 한번 개방된 수준은 어떠한 경우에도 그 이하로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 조항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지금 우리나라가 우리 영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극장에서 1년에 일정한 기준 일수 이상은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해야 하는 스크린 쿼터제를 채택하고 있다. 몇해 전에 스크린 쿼터의 의무상영일수가 146일에서 73일로 대폭 축소되었다고 영화인들이 시위를 벌이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스크린 쿼터제를 축소해 보니까 당초 예상과는 달리 우리 영화산업의 피해가 워낙 심각해서 보호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우리 정부가 다시 의무상영일수를 100일 정도로 늘릴 수 있을까? 한미 FTA 시행 전이라면 그 대답은 예스이다. 문화관광부 장관이 마음만 먹으면 간단하다. 그런데 한미 FTA 시행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위 역진방지조항에 의하여 한 번 146일에서 73일로 축소된 이상 그보다 더 축소하는 것은 가능해도 그보다 더 늘릴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역진방지조항은 우리나라 정부가 그때 그때 경제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는 시장보호정책을 취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족쇄이고, 그 글자 본래의 의미 그대로 우리나라 시장경제를 낚시바늘에 꿰인 물고기 신세로 만드는 조항이다. 

넷째, 상대 국가의 정책이나 규정에 의해 직접적으로 입게 되는 손해가 아니더라도 이를 통해서 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되면, 이를 보상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이라고 한단다. 심지어는 우리나라가 FTA 협정문을 위반하지 않은 경우라도 정부의 세금, 보조금, 불공정거래시정조치 등의 정책으로 인해 일방 당사자의 자본 또는 기업이 “기대이익이 무효화”되는 피해를 입게 되면, 이를 보상해 주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가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실시하거나 환경보호를 위한 기업규제정책을 실시할 경우, 이는 대부분 간접적으로 대기업이나 외국계 투자기업에게는 손실을 안겨 주게 된다. 이것을 반사적 이익으로 보지 아니하고 법률상 보상해 주어야 할 간접수용으로 인정하게 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직접적인 피해액은 산출해 낼 수가 있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이러한 간접적인 피해액이나 기대이익은 산출해 낼 수가 없어 예측하기도 어렵다. 잘못하면 우리나라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해배상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다섯째, 투자자국가제소권, 이른바 ISD 조항이다. 이것은 정부가 한미 FTA를 위반하여 투자자에게 손실이 발생하게 될 경우, 그 투자자가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이 아닌 세계은행 산하에 있는 ICSID라는 중재기구에 직접 구제를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국제 중재는 3인으로 구성된 중재 판정부에서 단심제로 심리하는데, 중재인 3인은 투자자와 피소국 정부가 각각 1인을 임명하고, 분쟁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하여 의장중재인을 선임하되, 중재 제기후 75일 이내에 중재 판정부가 구성되지 않으면 ICSID 사무총장이 제3 국적의 중재인을 직권으로 의장중재인으로 임명한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것은 본질적으로 우리나라의 사법주권을 빼앗는 조항이다. 왜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분쟁에 대해 국내 법원이 아닌 제3의 기관에 권리구제를 맡겨야 하는가? 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는 조약의 해석에 관하여 법률의 최종적인 해석권한이 있는 법원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법권을 포기해야 하는가? 극단적으로 말하면 예컨대 공정거래사건에 관하여 우리나라 법원의 판결로 외국계 투자기업이 패소하여 손해를 입을 경우, 패소한 그 투자기업이 우리나라 사법부의 판결이 잘못되었다면서 판결 그 자체를 위 ICSID에 가져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앞서 설명한 조항들로 인해 한미 FTA에 관하여 우리나라와 외국계 투자회사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위 조항이 최종적인 해결조항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문제는 정말로 심각하다. 마치 바둑을 둘 때 멀리서부터 서서히 대마를 포위해서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듯이, 한미 FTA는 앞서 설명한 네거티브 방식에 의해 특별히 협정에서 유보하고 있지 않는 한 모든 분야에 걸쳐 무제한의 개방을 하게 하고, 역진방지조항에 의해 우리나라 정부가 융통성 있는 시장보호정책을 실시하는 것을 방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정부가 새로운 중소기업보호정책이나 환경보호정책을 하려고 하면 간접수용에 의하여 직접적인 손해가 아니더라도 간접적인 피해나 기대수익까지도 배상하도록 규정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위 ISD 조항으로 그 최종적인 분쟁의 해결권을 우리나라 사법부에게서 빼앗아 미국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세계은행 산하에 있는 ICSID라는 중재기구에게 넘겨준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줄 것은 다 내어주고 받을 것은 하나도 못 받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협정이 맺어지게 되었을까? 

위 프로그램에서 민주노동당 대표 이정희 의원이 말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유명한 사이트 “위키리크스”에서 최근에 한미 FTA 협상과 관련한 미국 비밀 외교문서를 공개했는데, 노무현 대통령 집권 당시 한미 FTA 협상을 총지휘한 김현종 당시 우리나라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협상의 전과정에서 미국에게 우리나라의 협상정보를 넘겨주면서 자기 말로도 “미국의 이익을 위해 죽도록 싸웠다”라고 발언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이익을 위해 협상대표로 임명한 사람이 상대방의 이익을 위해 죽도록 싸웠다니, 정말 믿기 어렵고, 믿고 싶지 않은 일이다. 

한미 FTA 비준을 둘러싸고 위 ISD 조항이 한미 FTA 최대의 독소조항으로 부각되어 국회 동의가 늦어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를 방문하여 한미 FTA가 비준 동의되더라도 위 ISD 조항에 관하여 미국과 재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국민적인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FTA와 ISD 조항에 대하여 법률의 최종적인 해석권한을 갖고 있는 사법부가 어떠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미 FTA도 크게 보면 하나의 계약이고, 어떠한 계약이 불공정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법원의 전문 영역이 아닌가? 그렇다면 한미 FTA에게 불공정한 독소조항이 있다면 이를 명확히 하여 재협상 테이블에서 해당 부분을 제대로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아울러 외교통상부에서 사법부의 재판권을 빼앗아 제3의 중재기관에게 맡겨버렸는데, 법원이 그에 관하여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법원장님께서는 취임 일성으로 사법부의 신뢰 회복과 이를 위한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셨고, 얼마 전에는 조경란 부장판사님의 제안을 받아들여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양형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하셨다. 그래서 나는 대법원장님께 법원행정처 내에 한미 FTA 재협상을 위한 TFT 구성을 청원하는 방법이 어떨까 생각한다. TFT의 연구과제는 한미 FTA에 어떠한 불공정 요소는 없는지, 있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바로잡아야 하는지, ISD 조항은 과연 타당한 것인지 등이 될 것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한미 FTA 비준을 둘러싼 찬반세력 사이의 대립은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갈등 요인으로 부각하고 있는데, 정작 한미 FTA에 대해 찬반 입장이 나뉘는 국민들의 대부분은 나처럼 한미 FTA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법원에서 한미 FTA 재협상을 위한 TFT를 구성하여 여기서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면, 그 결과가 어느 쪽으로 나오던지 간에 국민들의 의구심과 사회적 갈등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우리나라 사법부에 대하여 참된 신뢰와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TFT에서 연구한 결과에 대해서는 한치의 이의도 없이 승복할 것이다. 

[제안] 만일 이러한 저의 제안에 공감하는 판사님들이 계신다면, 이 글에 대한 댓글로 저의 제안에 동의한다는 취지를 기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만일 12월 한달 동안에 동의해 주신 판사님이 100명을 넘어선다면, 저는 정식으로 법원행정처 내에 한미 FTA 재협상을 위한 TFT를 구성해 달라는 청원문을 만들어 대법원장님을 만나뵙고 청원을 올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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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명순영의 훈훈경제 - 보다 나은 한국

청년 실업 대안은 청년 창업 
 
도전정신만 있으면 정부가 밀어준다

  

◆음지에서 성공한 청년 창업 스토리◆

 일자리가 없다. 전례 없던 경기불황 때문이다. 산업구조가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 시대로 접어든 탓이기도 하다. 주변에는 취업 자리를 알아보느라 동분서주하는 청년들이 널려 있다. 입사원서를 수십 장 냈다는 말은 이제 놀랄 만한 얘깃거리도 아니다.

하지만 이젠 생각을 바꿀 때다. 취업에 목매지 말고 창업에 나서라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크다. 용의 꼬리가 되려 애쓰지 말고 뱀의 머리가 되라는 주문이다.

중소기업청은 지난 11월 3일을 제1회 청년기업인의 날로 선포하고, 우수한 경영활동을 펼친 청년사업가들을 포상했다. 변대규 휴맥스 사장,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등 유명 벤처 CEO들은 제2의 창업 붐을 조성하려 대학가로 뛰어들었다. 매경이코노미는 음지를 양지로 바꾼 청년 CEO들을 만나 이들의 도전정신과 꿈을 들어봤다.

수도권 A대 전자공학과 졸업 예정인 김모 군(19)은 한숨부터 푹푹 쉬었다. 9월 중순부터 30곳 이상 입사원서를 냈지만 어디에서도 합격통지서는 오지 않았다. 최종합격은커녕 서류전형 통과도 쉽지 않아 답답해했다. 서울에 사는 그는 한 달 전부터 수도권 회사 취직을 포기하고 지방으로 면접을 갔다. 전남 여수, 충남 대천 등지까지 내려갔지만 최종 합격엔 실패했다.

졸업예정자들은 지난해 일자리를 못 구해 한 해 밀려내려온 선배들을, 이른바 ‘잉여(인력)’라고 부른다. 이 ‘잉여’나 아예 ‘장’기간’ ‘미’취업 상태인 ‘장미족’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김 군은 “주변 친구들이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러다 해를 넘기는 건 아닌지 마음이 초조해진다”며 “일단 붙으면 어디든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학가에서는 ‘대학 5년생은 필수, 6년생은 선택’이라는 말이 돈다. 그도 그럴 것이 4년제 대학생 평균 재학기간은 6년이다. 10년 전인 99년 졸업생은 평균 5년 7개월을 학교에 머물렀는데 5개월 늘었다. 이 같은 기형적 대학문화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고용 없는 성장 현실로

한국의 고용 현실은 심각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9월)에 따르면 청년실업률(15~29세)은 7.6%.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청년실업률이 16%, 프랑스의 경우 24%다. 이 수치와 비교하면 한국의 청년실업은 그리 심각하지 않게 여겨진다. 그러나 다른 통계를 보면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올 10월 기준 15~29세 인구 총 975만명 가운데 경제활동인구는 416만명이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99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낮은 42%다. OECD 평균인 54%와 비교해 크게 떨어진다. 실업률은 낮지 않은데 고용률도 높지 않은 이 모순된 현상은 비경제활동인구 때문이다. 취직 상태도 실업 상태도 아닌, 말 그대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취업준비, 육아, 가사, 쉬었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취업준비생 60만명은 비경제활동인구다. 고시를 준비하는 학원생들도 이에 해당한다. ‘그냥 쉰다’는 사람도 30만명에 가깝다. 또 실업을 피해 대학원에 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실질적으로는 실업자이면서 실업률에 잡히지 않는 셈이다. 지난 10월 신규취업자가 1년 전에 비해 1만명 늘었다지만, 이는 정부가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희망근로사업 영향 때문일 뿐이다.

문제는 앞으로 나아질 기미도 없다는 것. 경기 팽창이 고용으로 이어지던 기존 경제패턴이 깨졌다. 전문가들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 시대로 들어섰다고 본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겪으며 줄어든 고용은 다시 늘어나지 않았다. 이른바 고용시장의 ‘이력(Hysteresis) 현상’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한번 줄어든 고용은 웬만해서는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기 힘들다”며 “고용을 늘리는 원동력인 기업의 설비투자도 계속 감소 중”이라고 우려했다.

고용의 질도 떨어졌다. 종업원 500명 이상의 대기업이 생산한 ‘좋은 일자리’는 94년 210만개에서 2005년 120만개로 줄었다. 이 자리는 하청업체 인력이나 비정규직이 메웠다.

올해 대학 졸업자는 54만명. 그 가운데 37만명만이 취업에 성공했다. 76% 수준으로 지난해보다 0.3%포인트 줄었다. 전문대 취업률이 86%로 높았지만 일반 대학 취업률은 68%에 그쳤다. 그러나 대학 이상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가운데 비정규직 취업률이 26%로 지난해보다 7.4%포인트 늘었다. 최근 5년간 추이를 보면 정규직 취업률은 2006년 이후 매년 감소하고 비정규직은 증가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중소기업청 ‘1회 청년기업인의 날’ 제정



이런 고용대란 속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바로 창업에 나선 청년들이다. 지난 11월 3일 중소기업청은 이날을 ‘제1회 청년기업인의 날’로 선포하고, 12명의 청년 기업가들을 시상했다. 이들 청년 기업가들은 지난해 총 매출이 850억원, 올해 7월 기준 230여명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청년 CEO들의 창업 스토리를 살펴보면 ‘힘들지만 해볼 만한 일’이라는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4년 전 28세의 나이로 사업을 시작한 김양현 하나테크 대표(32). 그는 2005년 9월 허름한 공장 한 구석을 빌려 종업원 3명과 설비 2대로 휴대전화 부품인 ‘키패드’ 제조에 나섰다. 당시 그의 자산은 일체형 키패드 관련 기술과 2대의 생산설비뿐이었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일체형 키패드 관련 특허기술을 내는 데 성공했고 키패드 원자재 국산화에도 기여했다. 지난해 매출은 52억원. 2007년 21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김 대표는 월 300만개 이상의 휴대전화 부품을 생산한다. 그의 제품은 노키아 등 세계 최고 휴대전화업체에 들어간다. 고용을 우려하던 현실에서 60명이나 고용하는 당당한 CEO가 됐다. 김 대표는 “창업 초기만 해도 자금도, 거래처도 없이 남다른 기술만 믿고 사업에 뛰어들었다”며 “젊으니깐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을 냈다”고 밝혔다.

차도 블록 등 토목건축자재를 만드는 라스아이티에스의 유대규 대표(39)도 청년사업가다. 2003년 33세의 나이에 사업가로 나섰다. 창업 6년 만에 80억원의 자산규모를 가진 회사를 키웠다. 현재 특허 등록된 관련 기술만 41건에 달한다. 블록 분야에선 업계 1위다. 강신욱 히가리이노비젼 대표(35)는 29세인 2003년에 회사를 창업해 회사를 특수 디스플레이 분야 전문기업 반열에 올려놨다. 매출의 90% 이상을 수출해 창업 1년 만에 300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창업했다 실패를 경험한 뒤 재기에 성공한 청년 CEO도 있다. 설융석 와우엠지 대표(38)다. 그는 지난 98년 27세의 나이로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2003년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다. 그러나 이후 실패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2004년 재창업에 나섰다. 현재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하는 이러닝 콘텐츠 개발과 유통 분야 1위 기업에 올랐다.

유명 벤처기업인들 기업가정신 강연

창업에 나선 청년들을 위한 정부 지원도 어느 때보다 강하다. 신용보증기금은 지난해 마련한 성장단계별 맞춤형 보증 지원 체계 ‘창업지원종합시스템’을 본격 가동했다. 지난 8월 대학생 우수 창업아이템 경진대회를 열었고, 전 영업본부별로 ‘창업스쿨’을 개회 중이다. 창업스쿨은 예비창업자와 창업 후 1년 이내 초기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창업 전문 프로그램. 수료자에게 3년 동안 최대 3억원의 신용보증 지원과 단계별 맞춤형 지원이 이뤄진다. 신용보증기금 관계자는 “청년 창업보증 지원을 상반기 960억원에서 하반기 2500억원으로 늘렸다”며 “창업 성공률을 높여 고용시장의 선순환구조를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술창업기업에 특례보증 지원을 하고 있는 기술보증기금도 맞춤형 창업성장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녹색성장, 지식기반, 이공계 챌린저, 1인 창조기업 등 4개 분야 일자리 창출이 골자다.

서울시가 20~30대 청년 창업자(CEO)를 위해 마련한 ‘2030 청년 창업 프로젝트’가 호평받는다. 선발된 청년들은 1인당 10㎡의 창업 공간과 대출 지원은 물론 등급에 따라 1년간 월 70만~100만원의 활동비를 무상으로 받는다. 창업에 필요한 교육과 컨설팅, 제품 개발 시 홍보 마케팅, 판로 개척 등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됐다. 지난 6월 선보인 이 프로젝트를 통해 260여명이 뽑혔다. 서울시는 희망드림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2000만원까지 연리 2%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유명 벤처기업 CEO들도 제2의 창업 붐 조성을 위해 대학가로 달려갔다. 중소기업청과 벤처기업협회,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는 지난 10월 ‘YES리더스 기업가 정신 특강 발대식’을 개최했다. YES리더스는 ‘Young Entrepreneurs 리더스’의 줄임말. 중소·벤처기업 대표들이 전국 대학으로 달려가 도전정신을 고취시키고 기업현장에서 다져온 생생한 경험과 열정을 전수하겠다는 계획. 변대규 휴맥스 사장,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 등 20여명이 참여한다. 지난 9월 김영세 이노디자인 사장을 시작으로 조현정 회장, 송승환 PMC프로덕션 사장 등이 전국 81개 대학에서 1만명 이상에게 특강을 실시했다. 홍석우 중소기업청장은 “70~80년대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하면 된다’는 도전정신이 2000년 들어 쇠퇴하고 있다”며 “우리 경제가 조기에 활력을 찾고 소득 2만달러 시대를 넘어 경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기업가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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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경이코노미 취재수첩 / 명순영의 훈훈경제

늙기가 무섭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오래 살까봐 걱정이다. 돈 없이 말년을 보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만한 사람은 안다.


매경이코노미는 55~63년생인 베이비부머의 은퇴준비를 꼼꼼히 점검했다. 이들은 내년이면 55세 정년을 맞고 은퇴에 들어간다. 하지만 당장 일선에서 떠날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준비는 탄탄하지 못했다. 점수로 매기면 100점 만점에 50점 정도다.

노후에 필요한 돈은 생각보다 많다. 조사기관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6억원에서 9억원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베이비부머들은 돈이 없다. 집 한 채 장만하느라 벌어 놓은 모든 돈을 다 썼다. 자식들 학비 대느라 늘 허덕였다. 남은 돈을 따져보니 잘해야 3억원쯤이다. 기본적인 노후생활에도 돈이 꽤 부족하다.

문제는 베이비부머의 노후 불안이 이후 세대에도 똑같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자는 두 가지 현안을 풀지 못한다면 지금 젊은이들도 가난한 노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첫째는 부동산이다. 지금 서울에서 집 한 채 마련하려면 적어도 2억원은 줘야 한다. 베이비부머들이 그나마 집 한 채라도 장만할 수 있었던 것은 부동산값이 올랐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이마저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이미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집을 사기에 젊은이들의 벌이는 시원찮다.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취직한들 언제 월급을 모아 수억원대의 집을 사겠는가. 그렇다고 집값의 90% 이상을 대출받고 평생 갚아나가는 미국의 주택시장도 답은 아닌 듯싶다. 이번 세계 금융위기는 빚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한국의 고질병인 사교육비를 포함해 자녀 양육비도 심각한 이슈다. 기자는 사교육비 이슈에 앞서 보육시설 미비를 지적하고 싶다. 요즘 젊은 부부는 한 명의 자녀를 갖는 것으로 가족계획을 끝낸다. 두 명으로 늘어나면 양육비가 만만찮다. 또 아이가 한 명일 때는 어떻게 하든 맞벌이를 꾸려나갔다. 하지만 두 명의 아이를 둔 여성이 일터에 나가기는 쉽지 않다. 결국 쓸 돈은 두 배로 늘고 벌이는 반으로 준다. 이러니 부자들만 애를 낳는다는 서글픈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답이 있다. 부동산은 한국의 독특한 제도를 활용하면 된다. 바로 전세다. 외국인들이 한국 경제 문화 가운데 가장 생소해 하는 것이 전세 제도다.

최근 서울시는 장기전세, 이른바 ‘시프트’라는 정책을 선보였다. 아주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다. 집을 사지 않고도 내 집처럼 편안하게 살 수 있다면 집에 투자할 큰돈을 노후자금으로 마련할 수 있다.

양육문제는 정부가 풀어줘야 할 몫이 크다. 정부정책 우선 과제를 보육기반 마련에 둬야 한다. 그러면 여성인력 활용도 높아지고 국가 경쟁력도 세진다. 우리나라 여성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자자하지 않은가.

정책입안자들은 애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젊은 엄마의 서글픈 마음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늙기도, 애를 낳기도 두려운 한국. 이대로는 곤란하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01호(09.04.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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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000’만 없으면 살 만하다고 한다. 의료비다. 감기라도 걸려 병원에 한 번 다녀오려면 돈 십만원쯤은 각오해야 한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의료비 지출이 가장 많다. 2007년 1인당 7290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900만원 넘게 썼다.


한국에서도 ‘000’만 없으면 살기 괜찮다고 한다. 교육비다. 우리나라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특히 사교육에 쏟는 돈은 어마어마하다. 교육열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부작용이 너무 커 보인다. 자녀 교육에 ‘올인’하다 보니 부모들은 노후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쓸쓸한 말년을 걱정하는 처지에 놓였다.

더 큰 문제는 빈부격차에 이은 교육 불평등이 가난 대물림을 양산한다는 데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격차는 피할 수 없다. 기껏해야 절대빈곤층을 줄여줄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다른 각도로 빈부격차를 풀어내는 방법은 계층 간 이동이 원활한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최고이자 거의 유일한 방법이 ‘교육’이다.

과거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대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도 학교 교육만 열심히 따라가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던 시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은 어떤가. 많은 통계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해준다. 사교육비 격차가 곧 실력 차이다.

올 1~3월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각각 71만원과 16만원으로 4배 넘게 벌어졌다. 이 사교육비 지출 격차는 95년 3.2배에서 꾸준히 상승세다. ‘투입비용’ 차이는 고스란히 수능 성적에 반영된다. 한국교육개발원 조사를 보면 대학 합격자 부모의 월평균 소득은 ‘서울 소재 4년제 대학(246만원)→지방 4년제 대학(189만원)→전문대(146만원)→대학에 가지 않은 학생(131만원)’ 순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사교육비는 자녀가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들어간다. 과거엔 초·중등학교 때 뒤처져도 고등학교에서 만회할 기회가 있었다.

요즘 젊은 엄마들에게 “자녀를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시키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간 적잖은 핀잔을 들을 것이다. 많은 학부형들이 ‘사교육으로 다져진 초교 4학년 때 실력을, 또 사교육으로 고3까지 끌고 가야 좋은 대학에 간다’고 믿는다. 그 돈이 도대체 얼마인가.

정부가 사교육을 뿌리 뽑겠다며 입시제도를 바꿀 때마다 사교육이 오히려 번성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자식을 더 공부시키겠다는 부모의 ‘본성’에 역행해봐야 소용없다는 증거다.

기자는 가장 선행돼야 할 과제로 공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이 사명감을 갖는 일이라고 본다. 밤잠 안자고 연구하며 더 정성껏 가르치는 게 ‘가난의 대물림’을 해결하는 길이라는 소명의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학원 선생보다 실력 없다는 평가도 그렇지만, 열정마저 떨어진다는 비난은 부끄럽지 않은가.

의료비라는 아킬레스건을 안고도 미국에는 이민자들이 몰려든다. 미국은 바닥인생도 뒤집을 수 있다는 꿈을 준다. 그것은 믿을 만한 공교육이 있기 때문이다. 공교육만 탄탄하게 받쳐준다면 대한민국은 미국 아니라 그 어느 나라도 부럽지 않은 곳이 될 것 같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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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 "인성교육 없인 미래 어둡다"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76)을 수소문했다. 2009년 새해, 경제계 원로에게서 고언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만들고 IT 회사를 차린 벤처정신의 상징이다. 80년 서울 청계천에서 자본금 1000만원으로 시작한 삼보컴퓨터는 한때 연매출 2조원까지 성장했던 신화적인 기업이었다. 그의 창업정신 아래 한국은 디지털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속,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을 묻기에는 그가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이 전 회장을 찾는 과정에서 처음 접한 직함은 의외였다. 퇴계학연구원 이사장. IT업계 대부와 유교 관련 연구소 이사장이라니,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에 들어가면서도 한국 경제의 미래에 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유교와 디지털사회는 서로 동떨어진 공간에 있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은 “아무리 시대가 첨단을 달려도 모두 사람의 일”이라며 “IT 산업도 사람이 제대로 돼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신과 문명, 두 이슈에 대해 차근차근 얘기를 풀어나갔다.

요즘 근황이 궁금합니다.

저 스스로를 인성교육의 전도사라고 부르고 싶어요. 어른들, 특히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잘 몰라요. 그래서 제가 교육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지요. 1000명이든 100명이든 5명이든, 수강생이 모이는 곳이라면 포항·고령·연천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 강의를 합니다. 지금 한국은 허겁지겁 달려오느라 균형을 잃어버렸어요.

이사장께서 생각하는 인성교육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제대로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겁니다. 저는 일삼십(1·3·10) 모델이라고 불러요. ‘일’은 인생의 목표를 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삼’의 의미는 살면서 세 가지를 잘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남을 먼저 생각하고 스스로 경영하는 법을 배우고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라는 겁니다. 이 각각의 교훈에 구체적으로 세 가지씩 지침을 다시 정하고, 거기에 효도라는 항목을 넣으면 모두 열 가지가 되지요. 이 열 가지만 잘 마음에 새겨도 좋은 인성을 가꿀 수 있을 겁니다.

저부터 먼저 돌아보면 자식을 길렀어도 체계적으로 어떻게 키워야 할지 제대로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그러다 손자를 보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지요. 원칙만 설명했더니 제대로 설득이 되지 않아 감동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고요. 젊은 엄마들은 인성교육에 매달리다 학교 공부에 뒤처지면 어쩌나 고민합니다. 그러나 인성교육은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한 달에 한 시간씩만 꾸준히 가르쳐도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날 겁니다.

이 이사장은 박약회라는 이름의 유림단체 회장이다. ‘지식은 넓게 행동은 예의 바르게’라는 의미의 ‘박문약례(博文約禮)’를 줄인 말이다. 전국에 20여개의 지회를 갖고 있고 회원이 4000명으로 적지 않은 단체다. 보통 유교 선양 단체는 족보를 만드는 등 ‘조상’을 챙기는 사업을 주로 한다. 하지만 그는 “조상만 챙길 것이 아니라 우리 사업, 우리 자손 사업을 해보자”고 주장했고 그래서 시작한 것이 사회봉사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10년 전쯤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에 대화가 통하지 않는 현실을 고민하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책도 냈다. 이를 수정 보완한 것이 2008년 선보인 ‘인성교육, 성적보다 먼저다’라는 책이다.

그는 경북 안동에서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도 운영 중이다. 일반인과 학생을 대상으로 역시 인성교육을 하는 곳이다.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 장관이 이사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왜 인성교육에 전념하시게 됐는지요.

강의를 할 때마다 ‘당신 남편이 언제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젊은 엄마들에게 묻지요. 학벌이 낮아서나 영어를 못해서라는 답변은 안 나옵니다.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거나 독단적이라서 등 인성에 관한 불평을 늘어놓지요. 부서장이 신입사원을 평가할 때 무슨 얘기를 할까요. 영어를 못한다라든가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지 않아요. 일하는 태도가 올바르지 않다, 사람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 적극적이지 않다 등 역시 인성을 논하지요. 그러니 성공하는 삶을 살려면 인성이 중요하다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우리나라 발전 단계를 봐도 그래요. 한국이 급격히 경제성장을 할 때는 ‘잘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는 근면성,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충성심, 또 부모를 생각하는 가치관이 바탕에 깔려 있었어요. 이런 정신이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해 짧은 시간에 높은 성장을 가져왔다고 봐요. 지금은 어떤가요. 소득 2만달러, 3만달러를 얘기하며 선진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공동체 가치관이 사라졌어요. 아파트에 살며 학원공부에 시달리며 경쟁에 치여 있는 학생들이 사회의 주축이 될 때 선진국에 갈 수 있을까요.

선진국이란 돈이 많고 국내총생산(GDP)이 높은 나라가 아니에요. 바른 사람,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내 삶의 주변에 많은 사회이지요. 인성교육을 등한시한다면 선진국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풀뿌리 운동처럼 제가 하고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한다고 봐요.

이 이사장은 아주 충격적인 얘기를 해줬다. 지인이 초등학교에서 특강을 할 일이 있었다. 어린이들에게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휴대전화, 강아지, 게임기 등이 쓰인 카드를 주고 배에 빠졌을 때 버려야 할 것부터 나열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70% 넘는 학생이 어머니를 게임기보다 먼저 버렸다. 할머니나 아버지는 이미 일찍 바다(?)에 던져졌다. 그는 “아이들이 처음부터 못되게 태어난 게 아니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퇴계학연구원을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퇴계 이황 선생의 일생을 연구하는 게 주 목적입니다만, 결국 도덕사회를 구현하자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유학을 깊이 있게 연구합니다. 유교의 핵심은 ‘수기치인(修己治人)’입니다. 자기를 먼저 다스려야 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서양 학문은 자기를 먼저 수양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지식 위주로 교육하죠. 고용된 선생이 상류층 자제를 가르치는 게 서구식 대학의 뿌리입니다. 이러니 제대로 된 인성교육이 발전할 수 없었죠. 지식만 가르치게 된 겁니다. 하지만 동양의 학문은 자신부터 돌아보라고 합니다.

금융위기를 두고 명문대 출신들의 전문가가 지식으로 만들어낸 위기라고 합니다. 영혼을 팔았다는 얘기도 나오고요. 이사장님의 말씀과 맥을 같이하는 듯합니다.

요즘 기업들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이익을 내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합니다. 또 이러한 행위가 전혀 비난받지 않지요. 미국 월가의 이런 행태가 세계에 위기를 불렀다고 봐야지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모든 게 옳은 것은 아닙니다. 경쟁 위주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지요.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만났을 때입니다. 혜왕이 말했지요. “선생께서 천릿길을 마다 않고 우리 나라를 찾아주셨으니 우리 나라에 무슨 이로움이 있을까요?” 그랬더니 맹자가 이렇게 답했지요. “왕께서는 왜 이로움을 말하십니까? 나라를 다스리려면 인과 의가 중요합니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면 너무 이로움만 따져서는 안 됩니다.

CEO들이 새겨들을 말이기도 하네요.

MBA코스나 각종 최고경영자과정을 봐도 이익을 남기는 게 최고의 목표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단기성과보다는 기업이 공익에 부합한지 등을 고려해야 긴 안목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정부 역할도 중요하다고 봐요. 기업은 아무래도 자기밖에 못 보니까 사회적으로는 공익에 저해할 수 있지요. 정부가 기업들의 이익추구를 방치했을 때 생길 문제는 없는지 잘 살펴봐야 할 겁니다.

요즘 은퇴 뒤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주요 사회 화두로 떠올랐다. 이런 의미에서 이 이사장은 모범 사례로 꼽힐 만도 하다. 인성교육 전도사로 나선 것부터 그렇다. 또 볼런티어21이라는 단체 이사장도 맡아 활동 중이다. 이 단체는 자원봉사 단체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리더 양성, 프로그램 개발 등에 주력하고 있다.

벤처 1호 기업이었던 삼보컴퓨터가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때를 회고해보면 아쉬운 점이 많을 것 같군요.

제 자신의 얘기를 하기가 좀 그렇습니다만, 아쉬운 점이 있지요. 한전의 광케이블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두루넷으로 통신망 사업에 뛰어들었지요. 당시 한전이 체신부(지금의 정통부)와 상공부(지금의 지식경제부)와의 힘겨루기 때문에 저를 끌어들였어요. 한전이 상공부 산하에 있었는데 체신부 영역인 통신사업이 불가능해지자 두루넷에 지분을 투자해 사업을 시작했어요. 당시 체신부나 통신공사(지금의 KT)는 사업이 잘 안 될 것이라고 했지만, 통신사업은 커졌고 가입자가 100만명을 넘어섰어요. 국내에서 유일하게 나스닥에 상장하기로 했고요. 이때까지는 좋았지요. 한때는 두루넷 시가총액이 현대자동차와 LG전자를 합친 것만큼 됐으니까요.

그러다 김대중 정부가 한전은 전력사업만 하라고 해 통신망을 안 깔아줬어요. 어쩔 수 없이 제가 1조원에 가까운 빚을 내 통신망을 깔았어요. 하지만 믿었던 한전이 파워콤을 설립하면서 갑자기 어려워지게 된 거죠. 한전의 망을 믿고 사업했는데 한전이 자회사를 갑자기 만들고, 또 정부는 이를 옹호하고 나서면서 걷잡을 수 없게 된 거죠. 당시 삼보컴퓨터는 3000억원의 현금이 있었는데 두루넷 때문에 버틸 수 없었습니다. 당시 소송이라도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다 지난 일입니다.

이 이사장은 삼보컴퓨터의 역사를 뒤돌아보면서도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듯했다. 그래도 그는 한국에 컴퓨터를 처음으로 대중화시켰고, 두루넷으로 통신강국의 토대를 닦았다. IT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이끌었던 셈. 어쩌면 너무 빠르게 도입하려다 보니 빛을 못 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에게 “지금 사업이 될 만한 게 무엇이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허허” 웃었다.

한국의 성장동력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무슨 산업을 육성해야 할까요.

결국 IT 산업이라고 봅니다. 아일랜드가 유럽 최빈국에서 고소득 국가로 발전했고, 핀란드도 IMF 구제국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한국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 성장동력은 IT가 될 겁니다.

인터넷도 좋은 분야입니다.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인터넷도 모멘텀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한국이 치고나갈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강조해온 ‘퓨처 인터넷(박스 기사 참조)’이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용태 회장이 제시한 ‘국가 비전’]

■ ‘미래 인터넷’ 구축하면 세계 1위 가능

골드만삭스가 2025년이면 한국의 1인당 소득이 5만달러를 넘고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된다고 했다. 2050년이면 8만달러를 넘어 미국에 이은 2위가 된다. 이용태 이사장은 여러 번 읽은 듯 해진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를 보여줬다. 그는 그 성장동력을 인터넷이라고 했다. 그냥 인터넷이 아닌 ‘미래(Future) 인터넷’이다.

그는 “현재의 인터넷을 대체할 미래 인터넷을 연구하고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인터넷에서 가장 강점을 갖고 있어서다.

구체적으로 보안이 보장된 정부 전산망 구축, 전 국토에 센서망 설치, 이러닝(e learning) 시스템 구축, 전자 홈닥터 시스템 등이다. 특히 국토 센서망에 관해 그는 “전 국토에 10만개만 설치하면 기상, 교통, 재해 등의 통제가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의 포털과 데이터마이닝 기법의 장점을 합친 인포메이션 디스커버리(Information Discovery·정보 탐색)를 개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이사장이 예상하는 미래 인터넷 프로젝트 예산은 2조원이다. 그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고속통신망건설에 정부가 6000억원 투입했지만, 민간에서는 25조원을 투자했다”며 “이 프로젝트에도 민간기업이 많이 참여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인력 양성 방식도 혁신적이다. “기업이 대학 졸업생을 선발해 4년간 교육을 시킵니다. 3년은 기업에서 일하고 1년은 학교에서 배우는 방식이지요. 학비와 생활비를 합하면 1인당 2억원이 들 겁니다. 1만명을 양성한다면 2조원이 소요되겠지만 국채를 발행하고 학자금 대출 등 제도를 잘 활용하면 정부 예산은 2000억원이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 33년생 / 서울대 물리학 학사 / 미국 유타대 통계물리학 박사 / 이화여대 교수 / 한국데이타통신 사장 / 삼보컴퓨터 회장 / 두루넷 회장 / 퇴계학연구원 이사장 / 볼런티어21 이사장 / 숙명학원 이사장(현)

[대담 = 이제경 부장 / 정리 = 명순영 기자 / 사진 = 연수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88호(09.01.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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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포커페이스 모르는 MB정부

‘포커페이스’라는 단어가 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무표정하거나 마음의 동요를 나타내지 않는 얼굴을 말한다.

포커판에서 아무리 좋은 패가, 또는 나쁜 패가 들어왔어도 그 기분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다는 데서 유래한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경제관료들의 발언을 들어보면 MB정부가 이 단어를 한 번쯤은 귀담아 들어야겠다 싶다.

지난 6일 이 대통령은 “10월 베이징 ASEM 정상회의 때 한·중·일 금융정상회담을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위기가 심각하니 아시아 3국이 공동대처하자는 취지다. 물론 좋은 의도의 제안이다. 그러나 이 말을 듣는 순간 기자는 좀 당황스러웠다. 기자만 가진 느낌인가 했더니 환율에 정통한 A리서치센터장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참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둘이 똑같이 받은 메시지는 MB정부의 위기 극복 의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부에서 보기에도 상황이 얼마나 다급하기에 저러느냐’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정작 당사국과는 한마디 협의도 없이 말이다. 마치 포커판에서 ‘내가 무슨 패를 갖고 있소’라고 큰소리로 말하는 것과 같다.

일본과 중국도 비슷한 생각을 갖지 않았을까. 권철현 주일 대사는 대통령의 제안 직후 일본 관방장관을 만나 금융정상회담 개최를 논의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 측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중국도 “한국에서 구상단계인 것으로 안다”고만 했다. 아무런 정보를 받은 것도 없고 구체적으로 논의해본 적도 없다는 얘기다.

외환시장이 달러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MB정부는 출범 초 환율 상승을 용인했다.

고유가로 물가가 치솟자 5월께 환율을 잡는 방향으로 돌렸다. 당시 정부 목표는 1050원. 그러나 1100원을 넘어 상승곡선을 달리자 정부는 “달러를 풀겠다”고 공공연히 밝히며 개입에 들어갔다.

결과가 어떤가. 최근 3개월 동안 무려 200억달러 가까운 돈을 시장에 풀고도 환율은 달러당 1400원을 넘어섰다. 손 놓을 수 없다는 당국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일관성 없이 수시로 나온 구두개입은 아무런 정책효과가 없었다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매도, 경상수지 적자로 생긴 원화 약세를 달러 매도로 홀로 막아서겠다는 발상부터가 무리였다. 정부는 달러를 쏟아 붓겠다는 패를 보여주면서 환투기꾼까지 불러들였다.

“정책 수행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다. 언제 했나 싶게 은은하게 시장을 파고들어야 성공한다.”

한 전직 관료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기자는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을 떠올리며 수중의 얼마 안 되는 달러를 팔러 은행으로 간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77호(08.10.22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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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고 제갈정웅 대림대학 이사장님께서 메일을 주셨어요.
 

명순영 기자님께

 

"포커페이스 모르는 MB 정부" 잘 읽었습니다.

 

경영전략 교과서 첫장에 손자병법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략은 노출 시키지 말라고 되어 있고,

야구 게임에서 포수와 투수는 계속 사인을 교환하며

전략을 노출 시키지 않으려 하는 것을 구경하지도 못했나봅니다.

 

마지막에 얼마 되지 않는 달라 매각하려 은행 간다는 구절이 가슴에 와 닫습니다.

 

좋은 글 계속 기대합니다.

 

2008.10.15

제갈정웅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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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징비록’ 펴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MB정부, 원천기술 개발에 전념하라

◆ 난생처음 경험하는 경제위기 ◆

역사는 반복된다. 불행히 위기도 되풀이된다. 한국 경제가 수렁에 빠져들면서 97년 외환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2500달러 수준의 외환보유액과 건강해진 기업 체질을 고려하면 당시와 상황은 좀 다르다. 그래도 고물가 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침 산업부 장관을 역임한 정덕구 니어(NEAR)재단 이사장(60)이 외환위기 초기부터 협상과 극복과정을 생생히 담은 ‘외환위기 징비록’이란 책을 냈다. 징비록(懲毖錄)은 서애 유성룡이 임진왜란 때의 상황을 기록한 것으로 ‘징비’란 ‘미리 징계해 후환을 경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 이사장을 만나 현 경제 상황을 진단하고 해법을 들어봤다.

▶현재 경제 상황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지금은 위기의 요소들이 결집되는 단계로 보입니다. 비를 뿌리기 위해 수증기가 모여들고 있다는 비유가 맞을 것 같아요. 외환위기 때와 비교하자면 96년 7월쯤이 아닌가 싶습니다. 97년 12월 외환위기 사태를 맞았지만 1년 반 전부터 위기 징후가 보였어요. 당시는 대비를 못했습니다. 이번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으니 외환위기 때보다는 상황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위기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말씀인가요.

위기에 가까워진 것만은 분명해요. 한국 경제의 지난 10년간 발전 경로를 보면 보다 시장친화적으로, 수요자 중심으로, 세계화된 모습으로 발전하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만한 몇 가지 함정이 생겼어요. 첫 번째가 거시 경제적 함정입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성장, 물가, 국제수지의 3대 목표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다른 한쪽을 지나치게 희생해야 하는 구조로 발전했어요. 또 한·중·일의 산업 분업체제가 흔들리고 과열 경쟁 관계에 빠졌습니다. 게다가 이념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졌고요. 이런 구조적 요인에 최근 대외경제 환경이 나빠지는 등 위험요소는 분명히 커졌습니다. 한 분야에서만 위험하면 치유가 비교적 수월할 텐데 지금은 합병증처럼 여러 위험요인들이 나타나 해결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렇다면 위기라고 진단하고 대비하는 게 옳지 않은지요.

개인적으로 쉽게 위기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 게 좋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설을 얘기하는데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데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자기실현적 위기(Self-fulfilling Crisis)’에 빠질 수 있어요. 위기가 아닌데도 계속 불안해하며 위기 요인을 찾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경제 주체들이 새로운 의사결정을 미루거나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유동성을 선호하게 됩니다. 이러다 보면 안 와도 될 위기가 올 수 있어요. 97년 외환위기 때는 반대였습니다. 위기가 오는 요동치는 소리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경고음을 듣지 못했어요. 위험요소가 커지는데 문제없다고 정치적 이익을 위해 상황을 오도한 면도 있습니다.

▶위기 요인들로 무엇을 꼽을 수 있나요.

대외 요인과 대내 요인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대외 불안요인의 첫 번째는 유가 상승으로 나타나는 자원파동이에요. 불행히도 우리 경제는 고유가에 대한 적응력이 없습니다. 대체에너지 확보도 못했고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를 유지하고 있어요. 또 미국발 금융위기가 여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가계 부문 부실로 진행됐을 뿐 아니라 금융기관의 연쇄 부실로 이어지지요. 올림픽 이후의 중국 경제도 불안해 보입니다. 그동안 자산거품이 심했어요. 올림픽 이후 자산 거품 붕괴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여파로 1% 미만의 저성장으로 간다면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중국은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어요.

중국은 금융시스템이 매우 불안정해 위기 상황이 왔을 때 조정 능력이 부족합니다. 중국이 타격받으면 한국에도 ‘차이나 쇼크’가 불가피합니다.

▶대내 불안 요인은 무엇인가요.

앞서 구조적인 함정을 언급했지만 이외에도 최근 경제에 닥친 어려움이 큽니다.

우선 정부가 신뢰를 잃었다는 점부터 문제죠. 집권 초기인데도 미국 광우병 소고기 문제로 촉발된 촛불시위로 리더십을 잃었습니다. 국민들도 감정이 격화돼 이성적인 냉철함이 사라진 것 같아 우려됩니다.

또 위기가 닥치면 사회 도처에서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발생하는데, 우리나라는 금융권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 같아요. 외환위기 때는 은행들이 지나치게 대출을 많이 해 문제가 됐습니다. 지금은 지나치게 위험회피적으로 대출을 회수해 서민경제를 어렵게 하는 형태의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정치권이 너무 무력합니다. 정치는 국민을 통합시키는 기능을 해야 하는데 전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요.

▶외환위기 기록서를 냈는데 구체적으로 외환위기 때와 비교해 주십시오.

외환위기 때는 대통령 임기 말 현상이었는데 지금은 임기 초예요. 의욕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때에 어려움이 닥쳐 더 좋지 않은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97년에는 동아시아에만 해당하는 국지적 폭우라면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진원지입니다. 국제금융 통제기능도 지금이 많이 떨어지고요. 과거 대기업 부실이 원인이었다면 지금은 중소기업, 가계 부문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경제 상황이 더 나쁩니다.

그러나 위험에 대한 대응능력이 커졌고 도덕적 해이가 과거보다 훨씬 줄어들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에요.

▶MB정부 경제팀이 시장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받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경제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대외요인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은 비판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축소균형으로 가야 할 타이밍에 확대 균형을 추구한 것도 문제죠.

그러나 지금 어려운 환경을 잘 조율하고 있다고 봅니다. 정부기능이 살아있어요. 현 경제팀이 잘하네, 못하네 말이 나오는 것을 뒤집어 해석하면 아직 그만큼 여유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환위기 때는 당장 눈앞의 위기를 처리하느라 경제팀을 비판하고 말고 할 틈도 없었죠. 다만 정부가 말과 행동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환율당국은 ‘환율을 통제하겠다’라고 강력하게 의사를 나타낼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도박판에서 패를 보이는 것과 같아요. ‘적절히 대응하겠다’라는 수준으로 말을 아끼되 타이밍을 잡아 정책을 쓰는 게 중요합니다.

샅바를 놓친 씨름꾼은 경기에서 이기기 힘듭니다. 정부도 시장과의 싸움에서 샅바를 놓치지 않으려면 보다 신중하게 정책을 써야 해요. 그래야 정부에 신뢰가 쌓이죠. 과거 외환위기 때는 정부가 정책을 발표하면 주가가 떨어졌습니다. 신뢰가 없었다는 얘기예요.

▶현재 경제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한국 경제가 어려워질 듯싶습니다.

정부가 리더십만 회복한다면 심각한 위기로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한국인들이 얼마나 똑똑합니까. 외국에 나가면 절대 밀리지 않는 게 한국인이에요.

이런 인재들을 데리고 국난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요. 국민들은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또 정부가 고유가 저성장 국면을 잘 대처해준다면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의 성장 잠재력이 꺼지고 있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금리나 환율을 어떻게 해 성장률을 높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무엇보다 일본을 쫓아가기 위한 과학기술 투자가 중요합니다. 그중에서도 원천기술 확보가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책 우선순위를 과학기술에 둬야 합니다. 예를 들어 100억달러 기금을 조성해 국외 석학들을 모셔 기술 개발에 나서면 행정복합도시에 과학기술센터를 만들고,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단지를 형성할 수도 있을 거예요. 당장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지 몰라도 한국 미래 성장동력의 토대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빈부격차 등으로 홍역을 겪을 중국을 따돌리고 성장이 멈춰선 일본을 쫓아갈 수 있어요.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66호(08.07.30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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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노믹스 100일 평가…성장에 집착 서민경제 놓쳐

낙제점이다.

물론 3개월 만에 정책 성공여부를 따지기는 어렵다. 그래도 경제 살리기를 기치로 내건 정부이기에 컸던 기대만큼이나 실망도 크다.

심하게 말하면 어느 하나 괜찮은 수치가 없다. 연평균 7% 성장을 앞세운 ‘747공약’은 출발부터 헛구호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내놓는 올해 경제성장률은 5%가 채 안 된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심리로 올해 초 반짝했던 경기는 이후 내리 하향세다. 현재의 경기상황과 향후 경기국면을 예고하는 경기동향지수와 선행지수가 3개월째 동반 하락한 것은 하강국면이 본격화했다는 신호다.

경상수지는 5개월째 적자행진. 4월에만 15억달러 이상의 적자를 기록했다. 20만명 중반대를 유지하던 신규 취업자는 3, 4월 연속 20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7% 경제성장 얘기는 쏙 들어간 지 오래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물가다. 이명박 대통령은 52개 품목을 특별 지정해 관리에 들어갔지만 허사였다.

지난 2월 3.6%이던 소비자물가상승률 수치는 5월 4.9%로 수직상승했다. 여기에 유가도 천정부지로 치솟아 경제 불안을 가중시켰다. 휘발유는 물론 ‘서민의 기름’이라 불리는 경유값까지 뛰어 영세사업자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까지 갔다.

컨트롤 타워 부재

이처럼 MB노믹스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무리한 성장정책을 고집한 경제당국과 당·정·청 간의 잦은 이견노출 등을 꼽는다.

원자재값 상승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가 나왔지만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초부터 고환율정책을 고집해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지나치게 경제성장률에 집착해 물가상승의 부작용을 챙기지 못했다는 얘기다.

또 메가뱅크, 추경예산편성 등의 문제를 놓고도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여당과도 사사건건 충돌했다.

이른바 ‘기름값 비싸면 차량운행이 줄어들고 좋은 점이 많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재개하더라도 안 먹으면 그만이다’는 식의 안일한 대응방식도 비판받고 있다.

돌파구는 없을까.

최근 대외여건이 나아질 기미도 없고 소고기 사태와 맞물려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이제 100일 남짓 지난 시점인 데다, 경제악화를 진작 예견했던 터라 그리 실망할 일만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정책 조정 기능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당분간은 물가 안정에 주력한 뒤 경제활성화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60호(08.06.18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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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취재수첩] 외국에서 본 한국 기업

미국 하와이대 MBA(경영학석사) 과정에 있을 때다. 경제학 수업시간에 교수가 정상재와 열등재라는 개념을 설명한 적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정상재란 소득이 늘 때 수요량도 증가하는 재화다. 반대로 열등재는 소득이 줄 때 수요량이 늘어나는 재화를 뜻한다. 보석 같은 사치품은 정상재의 좋은 예다. 경제가 어려워져 석유 대신 연탄 소비가 늘어났다면 연탄을 열등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교수는 현대자동차를 열등재 사례로 들었다. 한마디로 품질은 그저 그렇고 값이 아주 싼 차라는 의미가 담겼다. 교수는 기자가 한국인이라는 점을 의식했던지 “오래전 얘기겠지”라며 얼버무렸지만,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실제로 미국 가계소득이 떨어졌을 때 현대차 매출이 올라갔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성능까지 무시당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JD파워 평가 결과 등 관련 자료를 찾아 ‘현대차는 세계적인 수준의 품질을 갖췄다’라는 취지로 MBA 전체 이메일을 돌렸다. 그 뒤 다양한 답글을 받았다. 주로 ‘막연히 갖고 있던 싸고 질 떨어지는 차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버릴 수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한참 뒤 들은 얘기지만, 이 사건(?)이 있은 뒤 담당 교수는 다른 수업에서 현대차를 열등재라고 강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MBA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기업 사례를 다룬다. 그러나 불행히도 연수 기간 동안 한국 기업 사례는 한번도 제대로 다뤄보지 못했다. 글로벌 비즈니스 무대에서 한국 기업은 ‘주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기껏해야 삼성이나 LG, 포스코 정도를 조연급으로 기억해 줄까. 기자의 이메일을 받은 뒤에서야 현대차가 한국 기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동기생도 있었다. 삼성도 요즘 이미지를 한참 구기고 있다. 지난 11월 MBA 졸업식에 일본의 한 경영대학원장이 초빙연사로 나섰다. 그는 삼성의 비자금 조성의혹을 언급하면서 막 현장으로 나가는 졸업생들에게 윤리경영을 강조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기업 취재 현장으로 돌아온 요즘, 기자는 한국 기업들이 세계 무대 속에서 살아남을 경쟁력을 갖고 있는가에 온통 관심을 쏟고 있다. 세계는 그야말로 전쟁터다. 과거의 군인은 기업이고, 총은 창조적 기술이다. 뛰어난 기업은 곧 국가를 지탱하는 경쟁력이다. 최근 세계 무대에 올라온 중국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국 일본 기업에 뒤처지고, 중국 기업의 추격을 받는 아찔한 상황,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금세 뒤처지고 만다.

새 대통령이 해야 할 핵심과제도 기업이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적이면서 사회에 가치를 줄 수 있는, 그런 ‘쿨(cool)’한 기업이 몇 백 개 쏟아졌으면 한다. 세계 경영인들이 배우지 못해 안달하는 그런 한국형 글로벌기업들 말이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 1436·송년호(07.12.26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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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서울대 대학원에 다닐 때 장수기업이라는 화두를 던졌는데 한가지 결과물을 보셨네요. 조동성 교수님은 아젠다를 제시하는데는 탁월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수기업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sustainable과 맥을 같이 하겠지요. 2007.5.7

 

 

  • 30대 '장수기업', '생존의 비밀'은…
  • 연합뉴스
    입력 : 2007.05.0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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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십년간 업계 수위를 지키며 지속적으로 성장해 온 ’장수(長壽)기업’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중소기업청은 기업승계 활성화 정책 수립의 일환으로 서울대 경영대 조동성 교수팀에 ’장수기업 메커니즘’에 대해 연구용역을 의뢰한 결과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 30개 장수기업을 선정하고 이들 기업의 경영 특성을 분석, 7일 발표했다.

      ◇ 30대 장수기업은 어디? = 연구팀은 우선 30년 이상 존속한 국내기업 중 업력의 80% 이상 기간 동안 지속적인 흑자를 낸 기업을 추린 뒤 다시 최근 15년간 매출성장을 지속한 기업을 산업별로 뽑았다.

      대기업 중에서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포스코, LG상사, 대림산업, 동국제강, 제일모직, CJ, 한국타이어, 한솔제지, 삼양사, 유한양행, 경방, 동화약품 등 15개 기업이 꼽혔다.

      중소기업 중에서는 대한제강, 에스엘, 삼영무역, 경농, 캠브리지, 삼호개발, 무학, 한국쉘석유, 수출포장, 인팩, 삼일제약, 유유, 행남자기, 유니모테크, 부산방직 등이었다.

      최종 선정된 30개 기업의 평균 수명은 51.9년이었으며 대기업은 59.3년, 중소기업은 45.7년이었다.

      ◇ 장수기업은 곧 우량기업 = 연구팀이 증권거래소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10년간 종합주가지수는 698(1997년 2월1일)에서 1422(2007년 2월1일)로 103.7% 증가했으나 30대 장수기업의 동기간 평균 주가상승률은 291.1%에 달했다.

      상장기업 전체 평균 주가상승률에 비해서도 3배에 달하는 수치다.

      장수기업 중 대기업의 평균 주가상승률은 414.8%, 중소기업은 146.8%였다.

      이들 기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해 2005년 기준으로 상장기업 전체 매출의 26%, 총 이익의 40%를 30개 장수기업이 담당하고 있었다.

      기업의 가치를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주식시장으로만 봐도 장수기업일수록 우량기업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셈이다.

      ◇ CEO 수명도 길어 = 이들 30개 장수기업은 역대 최고경영자(CEO)들의 재임기간도 상대적으로 긴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에 따르면 30개 장수기업의 역대 CEO 130명의 평균 재임기간은 17.2년으로 상장기업 전체 평균인 14.5년보다 2.7년 길었으며 장수기업 중 대기업 CEO의 평균 재임기간은 11.9년, 중소기업은 21.5년으로 집계됐다.

      이는 경영자가 단기적 성과를 쫓기보다 장기적.전략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 지속적인 기업 성장을 이끄는 요인 중의 하나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해석했다.

      특히 연구대상 기업 창업자의 평균 재임기간이 29.6년으로 업력 평균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길어 창업자의 초기 사업 기반과 기업문화 마련 역량이 기업 장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업계 선두 기업이 장수 = 장수기업들은 현대차, 포스코, SK, 삼성전자, 한국타이어, 한솔제지 등 주력 사업분야에서 줄곧 업계 1위를 차지하며 시장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창업 당시부터 현재까지 주력사업이나 제품이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R&D 투자비율이 동종업계에 비해 높은 편으로 주력산업에서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이들 기업은 정보화 시스템이나 지식경영 시스템도 대부분 업계 최초로 도입한 경우가 많아 일찌감치 안정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확립하고 경영효율화를 이뤘다.

      이밖에 기업문화 측면에서는 대부분 기업활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창업이념을 가지고 있었고 일찍부터 직원 재교육이나 복리후생 등 인적자원 개발에 적극적이었다고 연구팀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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